Grow up

Clean ver.

이른 저녁 떠날 채비를 하는 우석을 소파에 기대앉은 병찬이 불퉁하게 쳐다보고 있다. 오랜 기다림 치고는 재회가 지나치게 짧아 아쉬운 마음에 자꾸 삐딱한 소리가 튀어나갔다. 병찬이 입을 연다. “이렇게 금방 가는 게 말이 돼?” “하루 간신히 시간 내서 온 거야. 가야 돼.” 병찬이 입을 비죽인다. 소파 테이블 앞에 어지럽게 놓인 테이크아웃 음식 용기들은 거...

어지러울 정도로 강렬한 장미향에 시야가 잠시 아득했다. 병찬은 애매하게 열린 현관문을 잡고 서서 장미 뒤의 인영을 바라봤다. 안경을 쓰지 않은 탓에 병찬의 미간이 좁아진다. 누구세요? 병찬이 한 번 더 물었다. 사람보다 커다란 꽃다발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고 꽃을 들고 있던 얼굴은 점점 확실해진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람...

오랜만에 도착한 공항은 언제나와 같았다. 일상을 떠나는 이들의 설렘, 누군가를 배웅하는 이들의 아쉬움, 소중한 인연을 마중하는 이들의 반가움 같은 것들이 온통 뒤섞여 공기 중을 부유한다. 그 고요한 어수선 속에서 병찬은 입꼬리를 힘껏 끌어당겨 웃는다. 약속처럼 보조개가 패인 뺨을 어루만지고 마른 등을 쓸어내리는 식구들의 손길이 다정하게도 아쉬움을 한껏 머금...

고요하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일상을 깨뜨릴 최병찬이 이제 더는 곁에 없었다. 눈을 뜨면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했다. 때로는 지현과 저녁을 함께했고, 친구들을 만났고, 혼자 술을 마셨다. 지나칠 정도로 잔잔한 일상이었다. 그토록 바라 마지않는다고 생각했던 남들과 똑같은 일상. 매일매일 같은 궤도를 도는 삶. 고요하고 지루하고 평온했다. 너무 조용하다고 ...

창문 밖으로 나뭇잎이 흔들렸다. 간호사가 열어두고 간 창 틈 사이로 선선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병찬이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동그래졌다. 병찬은 김우석이 나오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았다. 승연은 자꾸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마음의 단단한 벽을 자꾸만 두드렸다. 두드리다보면 균열이 생기기를 바랐다. 그 균열이 거대한 붕괴로 이어지기...